[영림원CEO포럼] “한민족 DNA 발현과 규제 혁파가 대한민국 미래 개척 열쇠”
[영림원CEO포럼] “한민족 DNA 발현과 규제 혁파가 대한민국 미래 개척 열쇠”
  • 정현석 기자
  • 승인 2021.05.10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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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165회 영림원CEO포럼 강연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디지털경제뉴스 정현석 기자] 경제 관료에서 고대사 연구가로 변신한 김석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현재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가 6일 165회 영림원CEO포럼에서 ‘미래를 개척하는 한민족 DNA’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김석동 대표는 이번 강연에서 “대한민국은 기적을 일궈냈으며 그 원동력은 한민족의 DNA이다. 이 DNA는 지난 2500여년간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세계사의 중심에 섰던 기마유목민의 DNA와 뿌리를 같이하고 있다. 우리에게 내재된 끈질긴 생존 본능, 승부사 기질, 개척자 근성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국내외의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하려면 한민족의 DNA를 발현시키고, 또 규제혁파로 세계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창출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강연내용

대한민국은 반세기만에서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적인 산업국가와 민주국가를 건설했다. 1960년에서 2018년까지 세계경제 GDP는 약 8.5배 증가했지만 한국경제 GDP는 무려 42.6배 증가했다. 세계 경제 역사에 영원히 남을 기록이다.

지금까지 세계 역사에서 단기간에 고성장한 국가는 5개가 있는데 실질 GDP 기준으로 스페인이 16세기에 세계 평균 1.3배보다 높은 1.6배, 네덜란드가 16~17세기에 5.6배(세계 평균 1.5배), 영국이 18~19세기에 9.4배(세계 평균 3.0배), 미국이 19~20세기에 9.5배(세계 평균 4.1배), 일본이 20세기에 14.1배(세계 평균 5.0배) 성장을 기록했다.

2018년 기준 대한민국의 GDP 규모는 1조7,209억달러로 세계 10위이며, GDP 1조달러 이상 국가 중 1인당 GNI는 9위다. 2018년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6,049억달러로 세계 6위다. 1950년 이후 수출 10위권에 신규 진입한 국가는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3개국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의 주력 수출 품목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최상위권이다. 2018년 기준 메모리 반도체는 72.4%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세계 1위이며, 스마트폰 2위, 자동차 7위, 선박수주 1위, 디스플레이 1위, 철강 5위다.

1990년대 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한국의 대중문화 곧 한류(Korean Wave)는 2000년대 중반경 이후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하며 2010년대부터는 SNS 등을 기반으로 세계적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이 대한민국의 기적을 불러 일으켰나? 우선 GDP의 구성요소인 인력, 기술, 자본 등 세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인력 면에서 한국인은 근면하고 우수하다. 한국인의 평균 IQ는 107로 세계 최고이며 GDP 대비 공교육비도 세계 1위다. 유학생은 12.7만명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3위다. 인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일도 많이 한다. 일하는 시간이 세계 2위이며 평균 수면시간은 OECD 국가 중 최저이다. 그러면서도 평균 노는 시간은 세계 3위다.

영국 더 타임스의 한국 특파원을 지낸 마이클 브린은 <한국인을 말한다>라는 저서에서 “만약 당신이 한국인과 함께 에베레스트산에 갇히게 된다면, 한국인만큼 믿음직스럽고 용감한 친구는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또 한국은 기술 면에서 GDP 대비 연구개발(R&D) 규모가 세계 1위이며, 자본 면에서도 외자를 유치하며 개방 경제 실현에 앞장서고 있다.

이 인력, 기술, 자본 등 세가지에다 두가지 더 추가할 것이 있다. 일찌감치 해외시장을 승부처로 걸고 1960년부터 세계화 전략을 펼쳤다. 운명을 바꾼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한국의 기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기적의 원동력은 한민족의 DNA에 있다. 한민족 DNA는 네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하면된다는 신념으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끈질긴 생존본능’, 둘째,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장경제를 빠르게 체득하는 ‘승부사의 기질’, 셋째, 리더십이 확립되면 집단 목표에 몰입하는 ‘강한 집단의지’, 넷째, 세계를 무대로 나가서 승부하는 ‘개척자의 근성’이다.

한민족의 DNA는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활약했던 기마민족·초원제국 전사들의 DNA를 공유하고 있다.

유라시아 대초원은 동서 8천킬로미터의 광활하고 평탄한 지역이다. 여름에는 영상 40도, 겨울에는 영하 40도로 기온차가 심하고 강수량은 350밀리로 건조하다.

이처럼 엄격한 자연 조건에서 사람들이 살았다. 이들은 용감하고 유능한 독특한 인간 유형을 형성하며 이곳에서 살아남았다. 이곳 초원지역에서 기원전 3500년경 유목 경제가 등장했으며, 말이 교통과 생활의 주된 수단이었다. 이 기마유목민이 말을 타기 시작한 것은 역사적으로 실로 놀라운 일이었으며, 나무 안장이나 등자(발걸이) 등의 발명품은 말을 타고 활동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대초원에 기마군단이 등장하는데, 이 기마군단은 가공할 전투력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이 기마군단이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배사법(Parthian Shot)’에 있었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장면은 무용총 수렵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초의 기마군단은 기원전 7세기에 등장한 스키타이였는데, 500여년간 대초원을 지배하며 스키타이 문화를 형성했다. 스키타이는 기원전 514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70만 대군을 제압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역사>에 “스키타이는 아시아 유목민이다…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도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없다…도시도 성채도 갖지 않고 어디를 가나 집을 가지고 다니며 모두 말 위에서 활을 쏠 줄 알았다.”고 기록했다.

이 스키타이의 문화는 동쪽 끝 한반도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비슷한 무덤 양식이나 금관 문화 등은 이를 뒷받침한다.

유라시아 대초원에서는 스키타이에 이어 기마 유목 국가가 잇따라 등장하는데 흉노, 선비, 돌궐, 몽골, 여진 등이 대표적이다.

흉노 제국은 기원전 209년 세워졌다가 서기 89년에 사라지는데 그 당시 한나라 고조의 30만 대군을 대파할 정도로 한나라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흉노의 문화 역시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는데 무덤 양식, 금문화, 동복 등 유물이나 씨름, 언어, 의복, 순장 등의 풍습에서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흉노는 고조선에서 분리됐다고 했으며, 사마천의 <사기>에는 고조선은 흉노의 왼팔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89년 역사에서 사라진 흉노는 375년 훈제국으로 등장해, 유럽에서 최강 국가를 건설하고 100년 가까이 유럽을 지배했다. 독일 ZDF는 TV 다큐멘터리에서 “훈족의 원래 고향은 아시아 대륙의 최동단일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라며, 경주 근교의 묘에서 발굴된 점토상이나 말을 탄 사람 뒤에 솥이 실려 있는 기마상 등을 그 역사적 근거로 들었다.

흉노에 이어 몽골고원을 지배한 국가는 선비 제국으로, 존속 시기는 1~3세기였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선비의 조상은 동호이며, 동호는 고조선족이라고 했다.

선비 제국에 이어 552년에 몽골고원의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바로 돌궐이다. 돌궐은 745년에 멸망하기까지 고구려와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 역사서인 <구당서>에 고구려 보장왕이 죽자 옛 왕가와 유민이 돌궐과 말갈로 들어갔으며, 또 중국 역사서인 <신오대사>에서도 돌궐은 고구려와 동맹국이자 발해와 우호국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몽골 제국은 칭기즈칸이 몽골 초원의 부족들을 정복하고 1206년에 건국해 1368년 멸망하는데 최전성기에 동서로는 태평양 연안에서 동유럽까지, 남북으로는 시베리아에서 페르시아 만까지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발해가 멸망한 후 10세기 초에 그 지역에서 사는 사람을 여진족이라고 칭했다. 여진족은 1115년 금을 건국하는데 1234년 몽골·남송에게 멸망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여진·선비·몽골·흉노 등은 본래 아(我)의 동족이었다. 흉노·선비·몽골은 아(我)에서 분리…흉노는 조선의 속민이었다”라며, 북방 기마 민족의 원류는 고조선이라고 했다.

우리 역사를 통해 본 한민족의 원류는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 단군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민족 역사 기록의 시작은 환국이다. 유적, 유물 등을 통해 확증되지 않아 실존여부, 위치, 연대 등을 알 수 없으나 사서에는 환국-환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민족이 동북아에 세운 최초의 국가는 배달국이다. 여러 사서나 문헌에 배달국이 기록돼 있다. 배달국의 14대 왕이 치우다. 치우는 기원전 2600년에 청구국을 건설하고 황제에 올랐다.

단군조선(고조선)의 경우 그 건국 시기, 영역, 한사군 위치 등을 놓고 견해가 명확하게 갈려져 있다.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고조선은 대단군 왕검이 고구려 건국 2천년전에 개국했다.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경에 삼조선으로 분리됐다. 신조선, 말조선, 불조선이 그것이다. 고조선 유민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 남하하기 시작해 말조선 유민은 평양으로 왔다가 임진강 이남으로, 신조선 유민은 낙동강 동안으로, 불조선 유민은 낙동강 서안으로 천도했다. 고조선의 일파였던 흉노 세력은 가야·신라 지역에 진출했다.

세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0년간 사상 초유의 국제적인 초대형 유동성 공급으로 위기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잠재 리스크가 누증되면서 세계 경제의 불안정이 확산되는 국면이다.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가격은 급등하고, 과도한 레버리지로 총 부채는 급증했으며, 과잉유동성은 신흥국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의 위험이 다시 등장했지만 거시정책 수단은 무력화된 상황이다.

세계경제의 뇌관으로는 미·중 패권 전쟁, 미국 TPP 탈퇴 및 브렉시트 등 탈세계화, 중국·유럽·신흥국 리스크 등을 꼽을 수 있다. 대한민국 경제의 암초들은 곳곳에 있다. 가계부채·국가부채, 청년실업·고용절벽, 저출산·고령화, 경제·사회 갈등 구조, 경제양극화, 산업경쟁력 상실 등으로 성장이 정체되는 마당에 코로나19 사태까지 더해져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100미터를 달리는 속도로 1킬로미터를 뛰어왔다. 매우 숨이 찬 상태이며 이젠 숨 고르기를 해야 한다. 밤중에 안개 길을 걸어가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남나?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절대 죽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대한민국은 기마군단 DNA에 기반한 끈질긴 생존본능, 승부사의 기질, 강한 집단의지, 개척자의 근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전제조건이 있다. 규제혁파로 세계 속에서 맘껏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소련 등 4강국의 이해가 접하는 유일 지역이며,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상호진출 교두보이다. 또 미국·중국·일본 등 세계 경제대국의 중심에 위치에 있으며, 유라시아 철도의 기점·북극항로의 기점으로서 세계 물류의 핵심 축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한반도를 기점으로 세계를 잇는 거대한 유라시아 물류망이 가동되면 세계경제 회생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가 국제협력의 장이 되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은, 역동적이고 대외 지향적인 경제운용을 하고, 그리고 남북통일이 되면 세계 중심 국가로 등장할 것이다. 통일 한국은 2034년에 프랑스, 영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 6위 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영림원CEO포럼

영림원 CEO포럼은 2005년 10월 첫 회를 시작하여 매달 개최되는 조찬 포럼으로, 중견 중소기업 CEO에게 필요한 경영, 경제, IT, 인문학 등을 주제로 해당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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